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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펀 칼럼/코미디예찬!

[코미디예찬] 돌아온 개그맨 '서남용' 정적개그의 진수를 보여주다


[오펀 코미디 칼럼]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무섭지 아니한가>에서 퇴마사로 나오는 '서남용'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을 지 모르겠다.


2008년 '폭소클럽'에서 '사물개그'라는 전대미문의 장르를 개척하며  한 때 언론과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그가 홀연 자취를 감추더니,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왔다. 


개그콘서트 서남용개그콘서트 '무섭지 아니한가'의 퇴마사 서남용. 가만히 있어도 웃긴다


<무섭지 아니한가>에서 퇴마사로 컴백한 그는 단번에 "어어...이건 뭐지?"라는 대사를 유행어로 만들며 그의 존재감을 어필했다. 


관객들은 과거의 그를 알던, 모르던 그의 능청스럽고 뭔가 색다른 개그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마디로 '웃긴다는 것'.


필자는 과거 그의 개그를 보면서 '기발하다'며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난다.  생명이 없는 사물을 신체만을 이용해 표현한다는 발상도 대단했지만, 그게 실제로 일정 부분 성공했다는 점에서 더 놀랐다. 또한 사물의 속성을 관객들에게 설득하게 위해 사물의 형태만이 아니라 '박자'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그의 남다른 자질에 감탄했었다. 사람들이 사물마다 다르게 느끼는 미묘한 박자감을 이용해 사물을 흉내냈다는 얘기다. 


서남용 개그콘서트 '무섭지 아니한가'서남용 '어어...이건 뭐지'라는 대사를 치고 있다


개그맨들 스스로는 이걸 잘 모르는 경우도 많지만, 코미디에서 '박자(time)'의 개념은 굉장히 중요하다. 


개그맨들의 연기는 '박자'라는 개념에서 보면,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말도 빠르고 진행도 빠른 <동적 개그>와 말도 느리고 진행도 느린 <정적 개그>가 있다.


동적 개그의 대명사는 역시 수다맨 박성범이다. 그리고 최근 코빅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양세형이 이에 해당한다. 이 외에도 상당히 많은 인기 개그맨들이 동적 개그를 구사한다.  이들은 다음 번 액션을 관객이 예측하기 전에 또 한수를 두기 위해 일반적인 박자보다 빠른 진행을 고수한다. 천성적으로 말과 몸짓이 빠른 개그맨들도 많지만, 어쨌거나 이 방식은 관객이 예측하기 전에 뭔가를 던져 웃음을 유발하기에 유리하다. 


반면, 극소수의 개그맨들이 이 박자를 일부러 늦춘다. 서남용이 그렇다. 이들이 박자를 늦추는 이유는 관객들의 집중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이건 굉장히 미묘한 심리 게임이다. 박자를 늦추는 개그맨은 관객들의 호흡을 조절할 줄 안다. 그리서 멘트나 동작으로 웃기기 전에 그 공백(또는 사이)에서 웃을 시간을 창조해낸다.  관객은 그의 몸짓 하나, 멘트 하나에 민감해지기 시작하고 말을 하기 전, 동작을 하기 전 그 짦은 정지 시간 동안 농축된 웃음을 찾기 시작하는 거다. 


이것은 마치 음악이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그 사이의 공백으로 만들어진다는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웃기기 위해 틈을 없애는 동적개그와는 반대로 빈틈을 더 벌려 관객들이 웃을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창조하는 것이다. 


서남용 개그콘서트서남용은 단순한 정지감 뿐 아니라 동작감 또한 극대화할 줄 안다


서남용의 뛰어난 재능은 이런 빈공간을 창조하기 위해 미묘하게 박자를 조절할 줄 안다는 점에 있다. 말이 느린 개그맨으로는 개콘 네가지의 양상국도 있지만, 그가 말을 느리게 하는 건 천성에 가깝다. 그리고 일부러 촌스러운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단순히 말을 느리게 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진행하는 속도를 조절하는 서남용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돌아온 서남용은 과거보다 더 원숙한 기술로 관객의 호흡을 조절할 줄 아는 고수의 기질을 보여줬다. 전보다 더 미묘하게 박자를 조절하면서 정지감과 동작감을 극적으로 대비하는 명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도인처럼 또 어디론가 홀연히 없어질 지도 모르지만, 간만에 돌아온 만큼 좀 더 오래도록 그의 인상적인 코미디를 보고 싶다. 


[오펀 문화예술팀=허순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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