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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펀 칼럼/코미디예찬!

[코미디예찬] 거지로 완성된 '꽃거지' 허경환, '궁금하면 500원'


[오펀 문화예술팀=허순옥 기자] 개그맨 허경환이 새로운  코너 <거지의 품격>에서 단 2회만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9월부터 시작된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새코너 <거지의 품격>에서 '꽃거지'로 출연한 허경환은 자신은 그냥 거지가 아니라 꽃거지라며 한 여자를 놀려먹는 기행으로 관객을 웃기기 시작했다. 


개콘 거지의 품격 허경환


허경환 : "거지는 구걸하지만, 꽃거지는 구걸하지 않지"

김지민 : "그럼 구걸 안하고 돈을 어떻게 벌어요?"

허경환 :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어눌한 말투에 거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침없는 행동. 그리고 거지같은 논리를 들이대지만, 나름의 자존심으로 품격을 유지하는 엉뚱하면서도 친근한 '꽃거지' 캐릭터를 창조했다. 또한 허경환이기에 가능한 개성넘치는 이 캐릭터는 그동안 코미디계에 입문한 이후 허경환이 배우고 경험한 모든 노력의 총체들이 응축된 듯한 완성도를 보여줬다. 


무엇보다 "궁금하면 500원"이라는 대사는 코너의 시작부터 대박 유행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독 유행어에 민감한 그가 만든 '500원' 유행어는 지금껏 밀었던 그 어떤 대사보다 강력한 개그감이 느껴진다. 


허경환은 사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개그맨은 아니었다. 그는 관객의 호흡을 끌어내지 못해 안간힘을 쓰는 스타일이었고, 혹독한 코미디 무대에서 이렇다할 감각적인 개그를 터뜨리지 못해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 유독 유행어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참으로 끈질기게 반복적으로 밀었던 유행어, "있는데~"와 "아니아니아니되오" 같은 대사는 사실 그닥 재미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위 메인스트림에서 계속 머물러왔는데, 이는 그가 자신만의 개그 스타일을 무대에서 정착시키기 위해 참으로 성실하게 유행어를 밀어온 것에서 주효했다. 그것이 성공적이든 그렇지 않든 개그는 반복의 힘에서 나온다는 계율을 그는 몸소 실천했다. 


"있는데~"와 "아니아니아니되오"는 그 자체로는 유행어로서의 생명력이 약했다. 당연히 성공적인 유행어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유행어를 단 한시도 놓지 않았고 지속적인 반복의 힘으로 결국에는 관객들의 뇌리 속에 자리잡는데 성공했다.  재미가 있든 없든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무대에서 이 유행어를 사용해 관객들로부터 자신의 위치를 다지는데 성공한 셈이다. 


개그콘서트 <거지의 품격> 다시보기(9/23일자)  http://youtu.be/FMB2_ANZEIM 


이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를 성실한 개그맨으로 평가해야할까? 아니면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적으로 뛰어난 개그맨으로 봐야할까?


필자는 후자에 그를 두고 싶다. 그는 단순히 성실할 뿐 아니라 전략적이다. 무대에서 자신의 끼와 재능을 꽃피우는데 필요한 시간을 그렇게 끈질기게 버텨온 것은 단순한 노력만으로 될 것이 아니다. 그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버티는데 성공했고, 그 과정 중에 성장했으며, 최종적으로는 완성됐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 지를 항상 아는 개그맨처럼 보인다. 


이제 그는 성공적인 개그맨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이번에 선보인 '꽃거지'의 연기를 보면 그의 개그 감각과 무대 장악력이 어느 정도로 성장했는지 실감할 수 있다. 그는 이제 조급해하지 않는다. 표정으로 말할 줄 알게 되고 말의 호흡을 조절할 수 있게 됐다. <네가지>에서의 스탠딩 무대가 그를 큰 희극배우로 키워낸 것이 확실하다. 


'거지의 품격'은 명실공히 그의 출세작이 될 것이다. 


거지이지만, 구걸하지 않는 꽃거지. 이것은 마치 그가 과거 부족한 개그맨이었지만 결코 무대에서 주눅들지 않고 당당했기에 결국 성공한 것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꽃거지'는 그래서 '꽃'이 될 것이다.  허경환이 스타가 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