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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펀 칼럼/코미디예찬!

[코미디예찬] 개콘, '네가지' 실로 교묘한 자학개그

[오펀 칼럼]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인기 코너로 자리잡고 있는 <네가지>(2012. 김준현, 허경환, 양상국, 김기열)를 보다보면, 뭔가 교묘하다는 느낌과 함께 웃음의 포인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네가지>는 얼핏보면 관객을 향해 "나 부족한데, 그래서 뭐!"라고 큰소리치는 네(?)가지 없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자학도 이런 자학이 없다. 인기 없는 남자, 촌스러운 남자, 키작은 남자, 뚱뚱한 남자 등 여자들이 싫어하는 점을 한 가지씩 가진 이 남자들은 객석을 향해 자신의 단점을 당당하게 노출한다. 

그리고 자신의 단점 때문에 겪은 에피소드를 단상 위에 번갈아 올라가면서 풀어놓는다. 그리고 난 후 소리치는 마지막 멘트. "그래. 나 뚱뚱하다! 그래도 마음만을 홀~쭉해!" 이것은 자학일까 항변일까? 대체 이 웃음의 포인트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일단은 '공감'이 있겠다. 사람들은 저마다 모두 단점을 갖고 있다. 성격적인 것이든 외모적인 것이든 뭔가 단점이 있다. 그리고 이 때문에 겪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다들 몇 개씩은 가지고 있을 듯. <네가지>는 이러한 것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희화화한다. 객석에선 "맞어 맞어"라는 공감과 함께 웃음이 터진다. 

또 하나는 '역설'이다. 인기 없는 걸 알지만, 왜 인기가 없어야 하느냐는 항변이 있고 촌스럽지만, 나도 서울사람처럼 산다는 항변이 있고 키는 작지만 얼굴은 잘생겼다는 항변이 있다. 관객들은 태연한 표정으로 큰소리치는 이 항변에서 터진다. 항변이 웃긴 것은 이것이 진짜 항변이 아니라 역설이기 때문이다. 언뜻 부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인정에 가깝다.


마지막으로는 '자학'이다. <네가지>의 무대구성 중 가장 주목할만한 대목이 바로 여기다. 이들은 코너명처럼 네가지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큰소리를 내지만, 정작 마지막, 그리고 중간 중간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는 교묘한 멘트를 날린다. 그래서 <네가지>의 플롯은 처음엔 건방지고 큰소리치는 남자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결국 자신을 자학하는 버전으로 반전된다. 

'자학'은 사실 코미디와 근본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매우 중요한 장치다. '자학'은 일반적으로는 상당히 부정적인 단어지만, 주변에 잘난(또는 잘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득실대는 사회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자학'성은 거의 코미디에서만 살아남아 있는 미덕이다. 코미디는 기본적으로 이런 장치에서 성립되어 있는 측면이 강하다. 누구도 잘난 개그맨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코미디언의 쇼를 보면서 편안함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그들이 절대 '잘난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항상 관객보다 낮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극중에서 잘난 캐릭터를 만들어도 사실 이 캐릭터는 희화된 캐릭터다. 무언가 웃기고 비틀려있다. 즉, 잘난 사람들에 대한 풍자와 야유이지 정말 잘난 캐릭터를 만들지는 않는단 얘기다. 이것이 코미디의 대표적인 특성이자 친화성을 낳는 근본이다. 

아마도 먼 시대, 계급사회에서 만들어진 코미디는 이러한 '자학'성이 훨씬 더 강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된 사회의 개그는 이 '자학'을 교묘하게 꾸며야 한다. 너무 자학하는 개그는 오히려 불편하다. 그런데, <네가지>를 보는 관객들은 이 자학을 잘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개콘의 <네가지>는 실로 교묘하다고 할 수 있다.  

당당하게 스스로를 자학하는 개그 <네가지>. 시청자를 불편하게 만들지도 않고 잘났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못났다고 말하는 실로 교묘한 자학개그의 모범을 보여준, 그래서 우리를 편안하고 즐겁게 해준 개그맨들의 아이디어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오펀 문화예술팀 허순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