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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공연

[전시] 서울역사박물관, 'AP통신이 본 격동기 서울전' 개최


[오펀 문화예술팀=김태준 기자]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강홍빈)에서는 5월 11일(목)부터 6월 3일(일)까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세계 최대 통신사인 미국 AP통신사가 소장하고 있는 사진을 통해 8·15 해방이후 부터 4·19 혁명까지 서울의 모습을 조명하는〈AP통신이 본 격동기 서울전>을 개최한다. 


AP통신은 1946년 ‘조선전보통신사’를 설립하면서부터 한반도 문제를 본격적으로 사진에 담아 전 세계에 전달했다. 특히 6·25 전쟁 동안 많은 특파원과 종군기자들을 파견해 전쟁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았으며, 휴전 이후 자유당 정부의 국내 언론에 대한 보도통제가 심화되면서 AP 사진은 당시 국내 상황을 외부에 알리고 기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번에 전시되는 사진은 8·15 해방 이후 4·19 혁명까지 격동하는 우리 현대사와 함께 당시 서울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서울역 앞의 거리 모습을 담은 사진에서는 해방 이후 활기 넘치는 서울 거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큰 현수막이 걸린 조선공산당 산하 전평(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 회관의 모습은 당시 좌우대립의 상황을 보여준다. 


이번 AP통신 사진은 서울에서 벌어진 치열한 시가전투 상황을 자세하게 전하고 있다. 검은 연기에 휩싸인 아현동 어느 곳, 포화로 창문이 깨지고 간판이 떨어져나간 예식장 건물 앞 무너진 참호 위를 다급하게 뛰어가는 군인을 담은 사진 등은 6·25전쟁 중 서울이 최대 격전지였음을 암시한다. 


한편, 전쟁 이전 평온한 서울 도심과는 대조적으로 폐허로 변한 종로일대와 전쟁 이후 지붕이 반쯤 무너져 내려 앉은 세종로의 기념비전은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특히 명동, 충무로 일대 전쟁 전후 모습을 비교해보면, 이전의 모습을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잿더미로 변했다. 전쟁은 사람들의 마음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어린 북한군 포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군인, 반공파와 부역자로 나누어진 시민들의 갈등 등이 그것이다. 


전쟁 중에서도 서울사람들의 일상은 계속되었다. 서울수복 직후 사람들로 꽉 찬 노천시장, 부서진 건물에 의지해 과일가게를 열며 웃음을 잃지 않은 여인을 담은 사진 등에서는 전쟁 중 서울사람들의 삶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1953년 휴전에 즈음해서는 고아원의 모습과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를 치우고 쓸 만한 자재를 찾는 재건의 현장과 휴전반대 시위와 관련된 사진이 담겼다. 특히 무기보관소 사진은 휴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휴전 이후 서울은 빠르게 정상을 되찾아 갔다. 민간인들과 군인들이 뒤섞인 거리에는 활기가 넘친다. 1950년대 후반에는 전세계적으로 유행한 훌라후프가 전쟁으로 상처 입은 서울에도 들어와 “후라후뿌 대매출”을 외치고 있다. 


AP통신의 카메라는 이 시기 마지막 격동의 현장으로 달려간다. 국가보안법에 반대해 전단을 뿌리고 장면, 이어 3·15부정선거를 규탄하고 학생들과 시민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시위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남겼다. 탱크 위에 올라탄 시민들은 혁명이 성공적으로 끝났음을 알리고, 도심의 거리를 걷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에서는 해방-전쟁-시민혁명으로 이어지는 긴 격동의 터널을 지나 평온을 되찾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1945년 8·15 해방에서 1960년 4·19 혁명까지는 해방과 미군정, 좌우대립과 정부수립, 6·25 전쟁과 전재복구, 독재와 4·19 혁명으로 이어지는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굴곡이 심했던 격동의 시기다. 이 시기는 혼란과 전쟁, 보도 통제 등 우리 스스로 자유롭게 기록을 남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런 점에서 AP통신의 사진은 해방에서 4·19 혁명까지 격동기 서울의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해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오는 5월 11일부터 서울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전시관람 안내는 (02)724-0274~6번으로 하면 된다.


출처: 서울역사박물관